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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의 온전한 사랑?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기쁨의 선물들? ♡ (2021. 11. 29(1, 2 주제)/ 12. 4).

복의 근원~* 2021. 12. 5. 19:24
























♡ 아빠의 온전한 사랑?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기쁨의 선물들? ♡ (2021. 11. 29(1,2 주제?)/ 12. 4?).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야고보서 1:17‭-‬18). 아멘?


?? 아빠의 약속??은 우리를 향한 사랑?과 믿음, 소망에 근거한 순종을 원하시는데, 세상의 거래는 조직을 향한 우리의 충성을 원한다. 아빠가 은혜로 주시는 선물들?은 아빠의 충만한 영광? 안으로 초청하지만, 세상이 주는 선물들은 우리의 재능과 모든 자원을 원한다.


누군가가 내게 선물할 때, 나를 향한 사랑에서 우러난 은혜의 선물인지, 내게 무엇인가를 바라고, 주는 조건적인 거래인지 살피곤 한다. 사람들은 조직이나 사람들에게 큰 선물을 받으면, 그만큼 자기 가치가 인정받고, 대우받는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 선물이 덫?이 될 수 있다ㅜㅜ


♦️ 회사에 갑자기 교육받으러 가서 나는 세상을 잠깐 접했다. 내게 주어진 교육과 관계에 집중하면서, 사랑하는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교육생들에게 회사가 많은 선물들을 주었는데, 하나의 투자와 거래였다. 나는 그런 선물들은 부담이 되었고, 필요하지 않는데, 권유로 받았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 선물들?을 받아 마음의 선물?로 여겼고, 함께가려고 깊이 고민했고, 마음을 많이 쏟았다. 진실하게 반응하려고 했다.


우리는 누구나 선물들?을 받으면,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 선물들이 나의 자유를 속박한다면, 조직에 의해 조종당할 수가 있다. 그 위험성을 감지하기에 선물들?을 받을 때는 항상 조심스럽다ㅜㅜ 나의 자유와 재능, 자원들을 요구할 때, 착취를 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면, 그 선물은 뇌물이 되고, 사랑으로 맺어지는 관계?를 깨뜨리고, 서로 이용할 수 있다ㅜㅜ 나의 자유와 선택을 보장하지 않고, 암묵적인 거래로 선물을 보내는 경우라면, 그 선물은 거래가 되고,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투자하는 거래 관계는 거래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관계가 깨어질 수 있고, 서로를 버리는 조건적인 관계이기에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다ㅜㅜ;;


어떤 사람들은 은연 중에 선물들?로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자기 마음대로 상대의 자유와 재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맘몬의 영?은 돈으로 사람들의 자유와 재능을 사고, 조직의 공동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하거나 통제하는 힘을 행사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따를 때, 조직에 충성하는 노예가 된다ㅜㅜ 적어도 조직은 자신이 충성 만큼 보상해준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돈과 조직이 그 사람의 자유와 재능을 착취하는데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돈을 향한 탐심과 자기애? 때문에 눈이 가려서 잘 보지 못한다ㅜㅜ

돈과 조직의 노예가 되는 이유는 수고와 희생의 가치로 받은 물질적 보상과 명예 때문인데, 더 가치 있는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 회사에서 파트장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를 바란 적도 없지만, 말씀 안에 마음이 들여다 보였다. 회사 전체 분위기는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이 하고 싶은 소원을 이루고, 성과를 많이 낼 때, 명예와 돈을 함께 약속했다. 파트장님이 강의 중에 "꿈이 뭐예요?" 라고 내게 공개적으로 질문하셨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요?" 라고 대답했다.

개인 면담에서 나의 꿈을 더 키워야 한다는 조언을 내게 하셨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더 큰 꿈을 꾸라!'고 도전하셨는데, "조직에 충성하라!"는 말로 들렸다. 내가 더 많은 사람들과 계약하고, 관리하면 더 많은 돈을 벌고, 회사도 더 큰 이익과 명예를 얻기에 공동 이익을 위해 뛰라!'는 말씀이셨다.

조직이 원하는대로 움직이면, 내가 누릴 수 있는 물질적인 풍요와 명예를 약속하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렸는데, 나의 방향과 달랐다ㅜㅜ


내가 사회 생활할 때:) 학원 강사와 개인 과외, 선교 사역을 했기 때문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따라 자원하여 섬기는 태도로 일했는데, 회사는 사람들에게 미래의 준비와 실질적인 도움과 정보를 주면서, 회사의 공동 이익과 개인의 이익 창출을 중심으로 동기 부여했다.

나의 사회 생활은 교육과 양육, 개인의 성장과 미래를 위한 준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공동체 안에서 팀워크를 이루어서 그 뜻을 이루는데에 가치와 초점을 두었기에 각 개인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멘토링하는데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질적인 영역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회사의 방향과 가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데 목적을 두면서도 돈의 가치가 중심이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유치하고, 관리하여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는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왔던 방향과 가치와는 너무 다르다는 이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사람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를 더 우선으로 여기면, 사람들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겨서 변질될 우려와 위험성도 감지되었다ㅜㅜ 회사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내도록 사람들을 관리하고, 압력을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거부감이 많이 들었고, 부담스러웠다ㅜㅜ

스스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따라 맡은 일에 자발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후에 그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면 되는데, 성과를 내도록 압력을 준다는 말이 심적 압박으로 다가왔고, 도와준다는 개념보다 관리한다는 개념이 생소했고, 관리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ㅜㅜ

서로를 향한 개인적인 관심과 애정 없이 회사의 최대한 이익을 위해 짜내는 느낌이 들었고, 함께 했던 교육생에게서 회사에서 자기가 맡은 일 외에도 요구가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사람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가 더 우선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마지막 인사를 하며, 선물과 마음을 담은 감사 편지를 전했을 때, 파트장님이 내게 'FC와 잘 연계해서 계속 도와 달라!'고 말씀하셨다ㅜㅜ 내가 드린 마음의 선물?에 관해 회사의 조직 중심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에 아쉬움도 컸지만, 그분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도 되었다.

파트장님의 개인적인 성향과 마음은 내가 다 알 수 없기에 보이는 행동과 말씀으로 판단하고 싶지 않았고, 조직의 관리자로 최선을 다하셨다. 나를 안 지도 한 달 밖에 않 되었고, 개인적인 관심과 애정은 당연히 없으시겠고, 조직의 관리자로서 나를 대했음을 알기에 이해가 되었다.

조직에 충성된 분들은 항상 모든 초점과 관점이 조직에 맞춰져 있어서 인격적인 따뜻한 사랑?과 깊은 인간애를 느낄 수 없을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따뜻한 모습도 있으실텐데, 성과와 일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와 조직을 먼저 생각하고, 책임을 계속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시스템과 조직 안에서 길들여지는데,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으려고 스스로를 수단화, 도구화하는 사실을 목격했다ㅜㅜ 생존 때문에 회사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요구를 받아들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고, 돈과 세상에 충실한 노예가 되어버린다.

공동의 이익에 초점을 두고, 조직에 충성하다 보면, 자신의 더 깊은 인격적인 필요는 무시되기 쉽고, 일은 유능하게 잘 처리하지만, 따뜻한 가슴은 식어서 차가운 사람, 기계적인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인격적인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쉽게 외로움과 공허감을 느낀다.


성취감을 즐기는 일 중독에 빠져본 나는 일할 때는 항상 몰입하고,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과 공허감을 혼자 있을 때에 지독하게 맛봤다. 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나를 소중한 관계에서 고립시킨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높은 성취감과 강한 책임을 추구하는 완벽주의 성향은 더 좋은 성과를 낼수록 더 강화되었다ㅜㅜ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대기 중이었고, 나와 소중한 사람들을 충분히 돌보고, 사랑할 여유가 없이 나를 착취했는데, 좋은 성과와 결과 때문에 인정과 보상이 자연스럽게 따라와서 내가 공동체에게 기여하는 영향력이 있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스스로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꼈다.

'일 중독'은 한동안 내게 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세상에서 얻는 잠깐의 영광, 유능한 존재라는 존재감이 커질 때마다 만족도 느꼈지만, 사람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현실적인 안정이 되었을 때, 무엇인가 제조해내는 인간 기계로 계속 살고 싶지 않았다.

절대 고독과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에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왜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할까? 죽고 싶을 만큼 외로울 때에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소중한 관계가 내게 있을까? 하나님은 내게 어떤 분이신가?' 등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설 때, 사는 이유와 해답을 찾았다.

사람은 따뜻한 인간성을 상실할수록 무의식 속에서는 잠시 있을 세상의 영광과 돈, 물질 그 이상의 영원하고, 더 깊은 가치를 찾는 내면의 갈망과 아우성은 점점 커진다. 물질적인 가치가 나의 존재 가치가 아님을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소유할수록 공허해질 때, 적색등이 켜졌다ㅜㅜ

'현실의 안정과 만족이 다는 아니야! 나의 존재는 물질로 채워지지 않아! 돈과 물질, 명예와 인정보다 나의 영혼을 채워줄 영원한 것은 뭘까? 물질과 세상으로 채우려고 할수록 영혼의 목마름과 갈증은 해결되지 않아! 채울수록 왜 더 공허해질까? 나의 영혼은 인격적인 사랑을 원해!

전도서처럼 열심히 일해 쌓아두면, 뭐해?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ㅜㅜ 물질적인 세상의 것들을 얻으려고 쉬지 못하고, 수고하며, 나의 생명을 낭비하기에는 나의 삶이 얼마나 아까운지ㅜㅜ 육신과 안목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에 멈춘다면, 나의 존재 가치는 나의 육신 만큼일까❓'

사람의 존재 가치는 훨씬 더 귀하다. 하나님 아들을 희생시키실 만큼? 육신을 위해 일하는 삶에서 벗어나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람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맛보는 삶?? 예수님 안에서 위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풍성한 삶??을 예비하셨다~^^


매일 ♦️ 회사와 리더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과 지혜로 영혼들의 필요를 돌보시고, 아빠의 사랑?을 경험하게 해 달라고 중보했다~♡ 매일 중보할 때마다 아빠의 사랑이 나의 마음에 부어졌고,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평안과 기쁨?을 주셨다.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행복했다.

내가 전에 사역할 때나 일할 때에 느꼈던 마음보다 더 깊은 아빠의 사랑?이 부어졌다. 힘들었던 만큼 함께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꼈다. 나와 함께한 것만으로도 내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나의 영혼육의 상태가 다운될 만큼 힘들었는데도 얼굴을 보면, 다시 힘이 생겼다~^^


학원 강사로 일할 때는 새벽까지 선생님들과 재미있게 보냈는데, 내가 그분들을 깊이 사랑한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한 달 동안 서로의 얼굴을 봤는데도 어느 새 나의 마음 안에 깊이 들어와서 함께 있는 것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위로와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ㅎㅎ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중보한 후에 매일 만났기에 나도 모르게 사랑이 어느 새 쌓이고, 깊어졌음을 깨달았다. 몇 년동안 만난 것처럼? 아빠가 주신 감동을 따라 사랑하고, 계속 순종할 때, ♦️ 회사에서 만난 분들께 9만원 이상 재정으로 여러 모양으로 섬길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빠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셨다. 일하는 동료로서 매일 만나는 것과 사랑하려고 중보한 후에 매일 만나는 만남?이 얼마나 다른지 깨달았다. 나의 마음의 태도에 따라 사람들과 관계도 차원이 달라짐을 경험했다. 사랑?이 동기가 될 때, 함께하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가 있었다.


아빠는 내가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골방이나 마음에서 우러난 중보와 사랑?으로 섬긴 열매들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지 보게 하셨다~♡ 그 열매들은 먼저 나의 마음 안에서 맛볼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이 전달이 되었다.ㅎㅎ 먼저 내게 사랑의 선물들?로 깊이 다가왔다.

내가 가정이나 교회, 일터나 어느 곳에 있든지 일상 속에서 사랑의 동기로 중보하고, 섬긴 헌신은 내게 가장 큰 축복과 선물?이 되었다~^^ 전에는 일한 대가로 느끼는 보람과 인정과 보상에서 만족을 얻었는데, 지금은 보상과 상관 없이 사랑하는 것자체가 내게 큰 선물?이 되었다.

서로 함께한 시간들이 내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고, 아빠와의 관계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사랑의 친밀감이 내게 가장 큰 기쁨의 선물?이었다~^^

아빠가 허락하지 않으셔서 내려놓는 과정에서 마음이 아팠지만, 항상 아빠의 뜻과 계획이 내게 최상임을 신뢰하기에 기꺼이 내려놓았다~♡ 아빠는 아빠의 뜻에 나의 감정까지 순복할 수 있는지 보시기 원하셨다. 나의 뜻과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 아빠의 뜻대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이른 새벽이나 밤 늦게까지 깊은 고민 가운데 함께 가지 못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 때, 마음이 넘 아파서 눈물이 여러 번 쏟아졌다ㅜㅜ 교육비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고통 때문에 마음이 넘 아파서 가슴 앓이를 했다. 마음이 깊어져서 나도 내심 놀랐다?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 전부다?? 아빠와 예수님도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고통이 죽음의 고통보다 더 크셔서 왕좌를 버리고, 우리가 있는 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것처럼?? 사랑은 함께할 수 있다면, 어떤 대가 지불도 기꺼이 하고, 죽음과 지옥 같은 고통도 견디는 힘을 준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사랑하는 아빠와 예수님과 더 멀어지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지 않다. 항상 어디에서든지 함께하고 싶다. 아무리 십자가✝️에서 겪는 고통이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나의 유일한 소원??은 사랑하는 아빠와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깊이 사랑하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다른 것으로도 대체할 수가 없다ㅜ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이 전부이다. 아빠와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에 순종하여 나의 십자가를 지고, 아빠의 말씀에 나의 전부를 헌신하는 것이다??

아빠의 말씀이 임하면, 나의 생각과 기준, 계획은 멈추고, 자원하여서 아빠의 말씀을 따르게 된다. 아빠의 말씀이 어느 새 나의 전부가 된다. 아빠의 말씀에 순종할 때, 비록 나를 부인하고,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보여도 아빠가 나와 함께 하심?을 알기에 어디라도 따라가게 된다!!!


♦️ 회사에서 한 새로운 경험은 나의 일상이 사랑과 중보로 채워질 때에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맛보기였다. 예고편이었다. 얼마나 풍성한지!! 아빠는 맛보기 과정을 통해 영적인 깨달음과 하나님 왕국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잠깐 머문 정류장을 통해 풍성함을 경험했다.

내가 배우자와 만나서 결혼한 후에 매일 사랑과 중보로 서로를 섬길 때, 얼마나 풍성한 영광을 함께 누릴지 미리 맛보게 하심을 아빠께 감사드린다~^^ 밀물 같이 다가온 사랑의 파도?가 나의 전존재를 덮을 때, 내 영혼은 씻어지고, 새로워졌다. 서로가 깊이 사랑할 때는 어떻게 될까?!!

한 달 동안의 경험이 결혼과 가정을 향한 더 큰 소망과 기대를 얻는 단초와 같은 사건이 되었다. 아빠가 허락하신 모든 순간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예수님 안에서 사랑으로 맺어진 하나된 부부관계는 어떤 관계보다 우선한다. 아빠의 사랑을 서로가 더 깊이 경험하면, 더 풍성해진다!!


?? 내가 일에서 만난 사람과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은 만남의 특성과 내용이 달랐다:) 일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하며, 개인의 이익도 추구한다.

일반적인 세상의 시스템 구조다:)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거래 관계이다.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거래는 깨지고, 버림당한다ㅜㅜ 조직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들은 조직에서 퇴출되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성과를 내어야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에 의해 항상 움직인다.

조직 안에서 생존하려면, 항상 삶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ㅜㅜ 더 많은 성과를 내어야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얻기에 조직의 노예가 된다.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와 친밀함을 추구하지 않으면, 사람은 조직과 사람을 위한 기능적인 도구가 된다. 능력과 성과 만큼 보상을 받는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공생하고, 동업을 맺는 관계는 서로의 이해 관계가 달라지면, 언제든지 서로 갈라설 수 있고, 서로를 버릴 수가 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과 시스템에 갇혀 있는 동안 왜 자신이 끊임 없이 조직과 일의 노예로 사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쉬지 않고, 일한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도구가 되어 자신에게 필요한 인격적인 필요까지 무시하며, 돈과 사람의 충실한 노예가 되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된다ㅜㅜ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레이서는 화려해보이지만, 넘 위험하다ㅜㅜ 자기 생명을 담보로 뛰는 것이다.


더 많은 돈과 명예, 사람들의 박수 갈채는 일시적인 위안이 되지만,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ㅜ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기회 비용이 넘 크다. 인정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능력과 지혜, 힘으로 성과과 업적을 이뤄내었기에 성취감과 자기 만족에 취해서 자기 내면을 돌보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화려하고, 외적인 자신의 이미지에 만족할수록 더 큰 박수 갈채와 인정을 원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의 평판과 인정에 영향을 받을수록 사람들에 의해 지배받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보다 조직이 원하는 사람이 된다ㅜㅜ

사회 조직과 사람들에게 계속 길들여지면,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된다. 사람들이 또 다른 영웅을 찾게 되면, 버림받는 이중 고통을 겪어야 한다.사회는 생존 경쟁으로 과열된 상태이고, 조직에서 버림받을까봐 두려워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ㅜㅜ

그러나 모든 관계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일에서 만난 사람이든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이든 사랑의 동기?로 대하면, 더 이상 거래 관계가 되지 않고, 진실한 친구 관계?로 서로를 정직하고, 따뜻하게 대할 수가 있다. 경쟁 상대보다 서로를 지지해주는 관계?로 만들어갈 수 있다!!


아빠는 사탄이 쳐놓은 세상의 그물과 덫을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세상의 그물과 덫?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주신다. 우리가 십자가✝️를 만나면, 우리의 존재를 지탱해주고, 우리의 가치를 평가한 세상에 대해 죽는 과정 안에서 우리가 입은 세상의 화려한 옷들을 벗기신다.

우리의 존재가 세상과 분리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세상을 나의 존재처럼 사랑했는지 인식하게 되는데,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ㅜㅜ 아빠가 주시는 영광스러운 성품의 옷을 입으려면, 나의 죄성과 수치를 가려준 화려한 세상의 옷들을 벗고,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서야 한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원수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실 수 밖에 없었던 처절한 고통과 아픔을 나의 실체를 직면할 때, 이해하게 된다. 우리의 내면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교만과 선악과 뿌리를 발견할수록 회개와 용서를 통해 우리 내면이 깨끗해지고, 사랑?으로 채워진다.

우리가 원수와 죄인되었을 때에도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자기 아들을 조건 없이 내어주신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마음으로 깊이 경험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빠와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을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기에 그 사랑?을 경험하면, 아빠와 예수님을 떠날 수가 없다.

아빠와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사랑을 조건 없이 나눌 수가 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별한다. 세상은 서로의 욕구와 이익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그 사랑?은 우리를 새롭게 한다~^^

아빠와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스스로 아빠와 예수님의 사랑?을 끝까지 거절하지 않으면, 우리의 전존재를 사랑?으로 채워주신다. 더 이상 우리가 세상의 부와 명예, 권력과 능력으로 차별을 받거나 사람들에게 보이는 외모로 판단받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된다??

세상에서 거절되고, 버림을 받은 상처로 두려움에 떨던 우리를 사랑?으로 안으시고, 온전한 사랑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 아빠의 사랑 안에 거할수록 사탄과 세상이 우리에게 속인 거짓말이 진리의 빛 가운데 드러나고, 우리는 아빠의 사랑??을 의지하여 서게 된다.

우리의 전존재가 아빠의 사랑받는 자녀의 정체성 안에서치유되고, 회복되어 아빠의 넘치는 은혜와 호의 안에 거하고, 아빠의 완전한 보호와 지혜, 선한 계획과 섭리 안에서 깊은 안정감과 풍성한 선물들?을 누리게 하신다~^^


??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으려면, 더 많이 충성하고, 희생해야 하는데, 아빠는 세상 시스템 안에 갇힌 나를 구원하셨고, 자유롭게 하셨다. 아빠는 더 많은 돈과 명예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십자가 과정✝️을 통해 깨닫게 하셨다. 나의 욕심을 버리고, 나를 비우면, 자족할 수 있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생존하려고 과도한 에너지를 항상 사용했는데, 세상 가치관을 내려놓을 때, 아빠와 영혼들을 돌아보고, 사랑할 여유가 생겼다. 진정한 행복과 기쁨, 평안은 사랑할 때에 주어지는 선물들?이다:) 헛된데에 나의 에너지 전부를 쏟은 잃어버린 시간이 이제 회복되었다.

아빠는 우리를 착취하시거나 무조건적인 충성과 희생을요구하시지 않는다. 세상과 자아의 감옥에 갇힌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순종?을 원하신다. 나는 돈과 조직, 세상의 명예 때문에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과 사랑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참된 안식과 행복, 기쁨?을 되찾았다.


평범한 일상 속에 아빠가 감춰두신 소중한 보물들??을 찾아내고, 발견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향한 아빠의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발견했다. 물질적인 풍요와 세상의 명예가 주지 못하는 깊고, 풍성한 아빠와의 친밀한교제가 회복되었고, 사랑받는 자녀로 행복을 누린다~^^

우리가 아빠의 사랑을 누리고, 서로 사랑할 때, 가장 큰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사랑하라!는 한가지 계명만 주셨다. 아빠의 형상인 사랑의 존재??로 변화될 때, 아빠의 온전한 사랑?을 누리기에 우리에게 십자가✝️를 선물로 주셔서 사랑이 되게 하신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우리가 온전한 사랑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하고, 사랑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린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사는 이유도 달라진다. 생존이 아니라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아빠의 온전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산다.

우리는 세상과 자아의 감옥에 갇힌 영혼들의 고통과 아픔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한다. 우리 자신도 세상의 노예로 살았기에 그 두려움을 경험해서 잘 안다. 이제는 상처투성이로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는 영혼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녀를 품으시는 아빠의 온전한 사랑??'이다.

아빠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실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기에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진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진 십자가✝️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한 영혼들이 아빠의 사랑?을 발견하고, 깊이 경험하도록 십자가✝️에 머문다.


우리를 위해 대신 지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향한 사랑의 확증과 증표가 된 것처럼?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예수님과 서로를 향한 사랑의 확증과 증표??이다. 신랑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와의 사랑의 연합??은 남편과 아내가 사랑으로 서로 연합할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신랑 예수님께는 신부인 우리가 전부?이시다.

신랑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신부를 위한 사랑?을 확증하셨고, 신부도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신랑을 향한 사랑?을 확증한다. 성령 안에서 신랑 예수님과 신부인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질 때에 서로를 사랑하는 십자가의 흔적✝️과 예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된다.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 사랑??을 이루셔서 사탄에게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같아지면, 승리한다. 예수님의 통치가 십자가✝️를 지는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고, 아빠와 예수님의 임재와 영광이 우리가 있는 곳마다 충만하게 임한다??

어린 양 신부인 우리의 마음과 교회 공동체 가운데 아빠와 예수님의 충만한 통치와 임재가 충만히 임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완성된다. 성전의 모퉁이돌이 되신 예수님의 통치 가운데 한 몸된 교회인 신부가 영광스러운 성전?으로 세워진다. 새 예루살렘성으로 준비된다??


?✝️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1‭-‬11). 아멘?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한일서 4:7‭-‬21). 아멘?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베소서 2:14‭-‬22). 아멘?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요한계시록 21:1‭-‬7‭, ‬9‭-‬11‭, ‬22‭-‬27). 아멘?





♡ ?? 종교 조직 vs 예수님의 몸? ♡ (2021. 11. 29).

조직의 공동 목적과 상호 이익 추구하는 공생 관계 vs 자녀된 각 사람을 향한 아빠의 온전한 뜻과 최상의 계획?


- 율법과 법 질서 체계(관리와 당연한 의무, 보상과 처벌) vs 성령님?(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와 양육).

- 죄책감과 두려움?(의무적인 희생과 생존을 위한 충성) vs 용서와 사랑, 감사와 소망?(사랑의 표현인 순종과 자발적인 마음의 헌신과 충성)

(예) 카톨릭의 조직화?/ 종교 조직:) 예수님의 머리되심을 부인하고, 베드로의 수장권 내세움! 교황을 예수님의 자리에 두고, 절대 권력을 줌 》 교황의 말이 법이 됨/ 잔인함ㅜㅜ 교황이 예수님을 대체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예수님의 몸이 아니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 음녀가 되었다.

》 사람이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법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면, 아빠의 용서와 사랑?을 무시하고, 영혼들에게 통치자와 조직의 충성과 희생을 요구한다.

》 율법에 엄격한 종교적인 사람은 점점 무정하고, 잔인해진다ㅜㅜ 율법을 통해서 사람을 쉽게 죽이고, 정당화와 합리화하는 덫에 걸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종교 조직을 세우려고 오시지 않았다:) 아빠와 예수님께 순종할 자녀들과의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맺기 원하셨다. 우리를 율법대로 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개별적으로 대하셨다!:) 제자들을 세상처럼 조직화하셨다면, 베드로의 부르심과 요한의 부르심을 같게 여기셨을 것인데, 요한의 부르심을 묻는 베드로에게 상관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 예수님은 각 사람을 다르게 부르신 아빠의 온전한 뜻을 존중하셨다. +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도 서로 다르게 부르신 아빠의 뜻을 따라 각 자가 각각 순종했다. 성령의 인도와 지시에 따라 자원하여 서로가 동역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한복음 21:18‭-‬22). 아멘?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사랑의 관계와 부르심을 회복했을 때, 요한의 미래에 관해 물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 예수님께서 종교 조직을 이끄신 지도자였다면, 베드로가 요한에 관해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조직은 공동 목적을 가진 운명 공동체로 여기고,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적은 정해져있고, 분명한데, 같은 목적이 아니라 각각 예수님과의 관계로 부르셔서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이 아빠의 뜻을 따라 각 자 사명을 감당하도록 서로 다른 모습으로 파송하셨다.

》 교회가 조직화되면, 유기체적인 예수님의 몸으로 움직일 수가 없다. 교회의 기본적인 운영과 행정체계가 필요하지만, 최소화하고, 항상 개인이 아빠의 뜻과 계획에 순종할 수 있는 자유가 존중되고, 서로가 동역하여 돕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 예수님은 종교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을 찾지 않으시고, 예수님께 온전히 충성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각 개인의 부르심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 충성해야 한다. 자녀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개인의 삶을 인도하시고, 통치하시도록 맡겨야 한다. 영적 어린 아이일 때는 영적 지도와 양육이 필요하지만, 영적으로 성장하면, 예수님께 충성하도록 기꺼이 허락해야 한다.


? 세상의 조직과 예수님의 몸은 완전히 다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왕국과 몸을 세우시는 통치 원리를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찾을 때, 세상의 조직처럼 교회가 움직이지 않음을 발견한다. 성령의 기름부음 안에서 계시된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와 감동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경험한다. 율법으로 정죄를 당하고, 소외된 영혼들을 양육하고, 치유하게 된다.

? 아빠가 교회를 보시며, 마음이 아파하시는 이유는 교회가 세상의 기업처럼 조직화되고, 사유화되어서 영혼들을 사랑으로 양육하기보다 법과 질서로 영혼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것이다. 영적으로 성장하여 스스로 영적인 양식을 먹고, 아빠와의 친밀함을 계발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도와야 한다.



♡ 아빠와의 인격적인 만남과 영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 (2021. 12. 4).

?? 아빠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아빠의 사랑?을 경험해야 가치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뀔 때, 구조와 문화가 변화되기에 교회 안에서부터 아빠의 사랑?을 경험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아빠와 인격적인 교제를 하려면, 말씀을 묵상하는 컨텍트가 행위 중심에서 아빠의 성품과 길을 발견하고,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관계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아빠와의 친밀함 가운데 마음을 정직하게 나누고, 성령의 기름부음 안에서 매일 영적인 양식을 먹고, 순종하는 삶을 연습하는 것이다.


(예) 예수님과 함께하며, 따르던 12 제자들도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교만과 불신의 태도, 실수나 잘못된 선택도 허용하셨다. 오히려 넘어짐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회복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셨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뼈 속 깊이 느끼게 하셨다. 더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제자들의 실수를 선용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하시기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연약함과 두려움, 불신과 교만 때문에 쉽게 넘어지고, 유한한 존재임을 스스로 깨닫고, 교만과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과 온유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분별하고, 성령의 인도와 능력으로 항상 순종하기 원하셨다.

사랑하는 예수님을 3번 부인한 베드로의 넘어짐은 베드로 안에 숨겨져 있던 자만심을 깨뜨렸다. 베드로는 연약한 자기 실체를 직면했고, 겸손해졌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할 것을 아셨고, 넘어진 베드로를 부활하신 후에 만나서 회복하실 예정이셨다. 그래서 베드로를 위해 중보하셨고, 베드로에게 회복된 후에 넘어진 자들을 굳게 세우라!고 부탁하셨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실수투성이고, 상처투성이로 사고 치는 사람들을 사랑과 인내로 양육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종종 만나게 된다. 실수와 연약함으로 넘어질 때에도 오히려 보호하시고, 두둔까지 하신다. 미성숙할 때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할 때도 많다. 그 때, 아빠는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은혜와 인내로 가르치기도 하시고, 훈계하시고, 징계하시기도 하신다.

각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셔서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지혜롭게 이끄신다. 아빠는 각 사람을 다르게 다루시고, 인도하시기에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면 않된다. 지도자라고 해도 아빠가 도우려고 보내신 경우 외에는 쉽게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거나 간섭해서는 않된다. 아빠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않된다. 그래서 항상 기도해야 한다.

아빠는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이끄시고, 도와주시려고 하신다. 그렇기에 서로의 연약함과 실수, 미성숙함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않된다. 염려가 되면, 먼저 중보할 때, 아빠가 직접 개입하시거나 사랑으로 어떻게 섬겨야 할지 우리에게 아빠의 지혜나 감동을 나눠주신다. 아빠의 지시가 없으면, 중보만 하고, 아빠가 하시는 일을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나도 아빠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아빠의 지시 없이 지혜를 나누거나 성급하게 도움을 준 적도 있었는데,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ㅜㅜ 충분히 깨달았다. 중보할 때, 아빠의 지시나 감동이 없으면, 중보만 하고, 아빠께 믿음으로 맡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움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아빠의 때와 역사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즉시와 기다림 사이에 있다. 영적으로 깨어 아빠가 말씀하시면, 즉시 번개처럼 움직여야 하고, 아빠의 말씀과 지시가 없으면, 항상 대기 중이다. 언제 말씀하실지 모르기에 나의 영혼의 안테나를 성령님께 민감하게 고정한다. 나의 생각과 계획을 비우고, 경청하는 태도로 마음을 열고,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일 때, 성령의 세미한 감동과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가 있다.

나의 역할과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 아빠가 사람을 보내주실 때까지 잠잠히 기도하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항상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기에 아빠의 창조 질서와 섭리를 따라 아빠가 행하시기에 내가 잘 반응하도록 나의 마음을 열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각 사람이 아빠가 주시는 감동과 뜻에 따라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온전히 순종하면 된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아빠의 뜻에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린 것처럼? 아빠와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아빠의 말씀에 자기를 온전히 드려 순종하는 것이 아빠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의 표현이기에 아빠의 뜻과 마음?을 알고, 아빠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충성스러운 사자처럼 순종할 때, 아빠는 아빠의 뜻을 아빠의 때에 아빠의 방법으로 이루신다??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27‭-‬29). 아멘?

??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함이로라."(요한복음 15:1‭-‬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