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 예수님 안에서 재발견하는 참된 정체성~^^ ♡

복의 근원~* 2017. 11. 27. 03:06

 

 

 

 

 

 

 

 

 

 

 

 

 

 

 

♡ 예수님 안에서 재발견하는 참된 정체성~^^ ♡ (2017. 11. 27)

 

주일(11월 26일)에 친한 동생과 우연히 통화하면서, 동생이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참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누구에게 속하였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과 소속은 우리의 선택과 현재의 반응,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복음 안에서 참된 자의식(인식)을 가지도록 도울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 부연 설명:

자아(自我, ego): 생각, 감정 등을 통해 외부와 접촉하는 행동의 주체로서의 '나 자신'을 말한다(위키 백과 사전).

 

 

요한복음 1장 12절과 고린도후서 5장 17절, 갈라디이서 2장 20절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왕과 구주로 영접할 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옛 사람(사단의 거짓말에 속아 범죄하여 영적으로 죽었고, 죽음과 형벌의 두려움, 죄의식으로 형성된 거짓 자아)는 예수님과 함께 못박혔고, 장사되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믿음으로 얻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할례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표식이라면, 세례는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었다는 표식이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님과 믿음으로 연합된 상태이다.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은 상태이다. 우리의 근원(뿌리)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는 그 뿌리를 통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는다. 구원을 이루는 여정은 예수님의 영, 진리의 성령님을 통해 믿음으로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께 깊이 뿌리 내리고, 생명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육에 역사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구속과 회복의 과정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재자이십니다. 그는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에서 사람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히브리서 9:11-15). 아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의 역사를 우리가 믿을 때, 예수님의 그 피의 효력이 나타난다. 믿음은 예수님과 우리를 연합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예수님의 피(생명)로 완불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다. 또한 우리의 마음 안에 거룩한 성령님이 오셨다. 예수님의 피와 영원한 성령의 능력으로 부패한 우리의 양심(마음)이 깨끗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씨,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심겨졌다.

 

 

(요한복음 1:1-5)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아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시고, 빛이고, 생명이시다. 그 생명은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자라나고, 더 풍성해진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의미는 우리가 말씀인 예수님과 하나됨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을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행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여주신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왕국(통치)을 세상에 나타내셨다.

 

? "도둑이 오는 것은 양을 훔쳐다가 죽여 없애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요한복음 10:10). 아멘?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 할 뿐이요, 아무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대로 한다."(요한복음 5:19). 아멘?

 

?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요한계시록 3:20). 아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안에서 예수님을 왕과 구주로 영접한 후에도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옛 사람(거짓 자아)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또한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한 우리 안에 있는 생명과 새로운 피조물인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참된 자아)을 가지게 된 자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여전히 우리의 옛 사람(거짓 자아)이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왜 일까?

 

나의 경우도 복음이 내 영에 깊이 인식되어 예수님 안에서 정죄함 없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옛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오래동안 미워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본심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긍휼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눈이 새롭게 열렸다. 하나님은 말씀의 거울로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 죄악과 허물을 그대로 정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하도록 이끄셨다. 나를 정죄하지 않고도 진리로 분별하여 비진리는 과감히 버리고,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는 선택과 순종을 통해 변화되었다. 하나님의 의도는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내가 더 깨끗하고, 온전해지도록 사랑으로 양육하고, 선한 손길로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사단과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고, 승리하신 구원의 사건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을 영으로 깊이 인식하지 못하여 육신의 눈(종교의 베일, 율법의 잣대)에 보이는 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명과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보다 옛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체계(선악과 열매, 지식의 나무 열매)가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용하며, 우리의 영혼을 돌보지 않고, 오래동안 방치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비진리나 혼합된 복음을 그대로 수용하여 진리이신 예수님을 거절하면,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죄사함, 정죄감과 두려움, 율법의 속박에서의 자유, 용서의 기쁨과 평안)과 영생을 누릴 수가 없다. 우리 생각 안에 우리 존재의 일부처럼 오래 뿌리 박힌 하나님을 불신하고, 대적하는 견고한 진(세속주의와 인본주의, 사람의 계명과 전통, 부정적인 생각들, 사람들의 논리와 종교적인 생각, 고정관념과 습관적인 자동적인 사고방식, 방어기제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옳게 분별하는 생각의 훈련을 통해 진리의 사고체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흑암의 권세 아래서 계속 고통받는다ㅜㅜ 우리가 스스로 멈추고,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선택이나 진리에 순종하지 않으면, 고장난 테이프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옛 습관대로 살아서 복음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된다. 우리 안에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데도 세상과 육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살면, 우리는 다시 생명에서 끊어지고, 멸망을 받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로마서 8:13-18). 아멘?

 

 

? (ex) 나의 경우..

처음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나의 존재와 마음, 눈이 새롭게 된 영적 경험과 기쁨이 기억난다. 그 때는 구원의 감격과 은혜 안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열정과 기쁨이 넘쳤다. 내 안에 생명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생명이 변화를 가져왔고, 사람들에게 그 생명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난 현실에 쫓기어 서서히 내 마음과 생각도 나뉘었고, 어느 새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과 열정을 잃어버렸다.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성취감에 취해 있는 나를 발견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형식적이고, 일중심의 관계로 바뀌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어가고 있었음에도 전혀 눈치를 못 챘고, 생명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내게 은혜를 주셨다. 내가 영적 파산선고에 이르러 스스로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돌이키도록 잠잠히 기다리셨고,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세상의 성공이나 현실적인 안정을 얻은 바른 삶이 내 영혼에 만족을 줄 수 없었고, 내 영혼은 메마르고, 공허하였고, 고달팠다. "전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하나님께 100% 헌신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여주세요ㅜㅜ" 외쳤다. 그 이후, 다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났고, 그 첫 사랑을 회복한 후로는 그 사랑 안에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나의 전부를 걸었고, 하나님을 최우선순위로 여기고, 순종하였다. 그러나 굳어진 종교적인 희생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순종하는 기쁨을 누리는데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복음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1) 빛이신 말씀과 성령의 검으로 우리 안에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분별하면, 거짓 자의식과 참된 자의식을 구분할 수 있다.

 

매일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이나 상황 속에서 반응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 삶의 태도를 복음에 입각해서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세심하게 돌아봐야 한다. 매일 말씀의 거울로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볼 수 있도록 성령님께 빛을 비춰주시도록 요청하고, 우리 안에 심겨진 생명의 씨앗(말씀)이 뿌리를 잘 내리도록 부지런히 보살펴야 한다. 인생의 비나 폭풍이 다가올 때, 반석 같은 말씀이 우리를 지탱하고, 보호막처럼 붙들어주며, 세워주기 때문이다. 길이 없는 곳에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발을 내딛으면,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GPS처럼 우리 앞서 길을 인도해주기도 한다. 지치고, 힘들 때,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위로와 소망, 새 힘과 평안, 기쁨과 완전한 방패가 된다.

 

생명이 없는 종교적인 신앙생활은 우리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고, 안일함과 익숙함 안에서 생명력을 상실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영혼이 무감각해지고, 굳어져서 영적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상태가 되기에 우리는 항상 깨어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우는 사자처럼 두루 삼킬 자를 찾는 사단의 공격과 치열한 영적전쟁에서 안전하게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길은 항상 빛 가운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직하게 노출시켜서 매일 살피고, 신중하게 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를 선택할수록 진리가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주고, 계시된 진리가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주고, 그리스도의 인격이 우리 안에 형성되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승리할 수 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깊이 깨닫고, 경험하면,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뀌게 된다~^^

 

율법적인 의식구조 안에서 쉽게 자신을 정죄하고, 부끄러워하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자유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 자신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 그대로가 용납되는 사랑받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내가 미성숙하고, 부적절해서 거절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자유해져야 한다. 우리 자신의 행위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잣대(기준)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할 때에 오히려 자신이 비참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 사랑을 받게 되고,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사람들의 판단과 평가에 매이지 않게 된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존감을 세워주시고, 보호하신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고, 죄책감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마음 그대로를 고백할 때, 히나님의 위로가 임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존재로 아버지의 사랑의 확신과 담대함 안에 서는 법을 배운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새로워진다. 모든 상황과 환경, 관계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 안에 숨겨둔 깊은 상처와 아픔들을 다 드러내셔서 고치시고, 치유하여 예수님의 형상을 닮도록 이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발견한다.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어가는 아름다운 우리 자신의 모습이 나타날 때, 우리는 감사로 모든 과정을 인내할 수 있고, 우리 안에 계신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님과의 완전한 연합을 갈망하며, 소망하게 된다~^^ 할렐루야!!!??

 

 

(3)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임을 깊이 인식하면, 우리의 존재가 새로워지고, 우리의 마음가짐과 모든 영역이 변화된다.

 

하늘의 통치권과 축복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와 예수님의 신부?로서 우리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게 된다. 우리의 말이 죽이고, 살리는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원하는 소원이 일어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과 속성이 우리를 통해서 삶에서 나타나기를 원한다. 매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의 섬김을 배우고, 나누며,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과 성품을 경험한 만큼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낼 수 있다. 매일 세상에서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과 생각, 상처들을 성령님 안에서 비췸을 받아서 회개하며,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하는 시간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사랑의 역량이 커져서 섬기는 기쁨도 그만큼 커지며, 기름부음도 증가된다. 계속적인 선순환이 일어난다.

 

 

? 총제적인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바탕이 되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성취에 대한 큰 그림과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긴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이 더 분명해질 것이다.

 

(ex)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성령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도록 구하며, 깊이 묵상하는 것도 좋다.

 

 

?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이 책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을 하기 위한 완전한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디모데후서 3:14-17). 아멘?

 

 

?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전에 여러분은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분의 육신의 몸으로 여러분과 화해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내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에 튼튼히 터를 잡아 굳건히 서 있어야 하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복음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되었으며,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 없이 전파하게 하시려고 내게 맡기신 사명을 따라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 비밀은 영원 전부터 모든 세대에게 감추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성도들에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 가운데 나타난 이 비밀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성도들에게 알리려고 하셨습니다.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요,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권하며,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작용하는 그분의 활력을 따라 수고하며 애쓰고 있습니다"(골로새서 1:13-29). 아멘?

 

 

? 신앙 생활은 단순하다. 사람들과 관계히고, 정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색해서 힘들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마음 중심과 의도를 깊이 알고, 이해하려면,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말하며,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하면, 점점 더 쉬워진다. 가치있는 무엇인가를 우리가 얻기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한계를 인내로 반드시 돌파하고, 임계점을 넘어서야 한다.?

 

말씀을 '행위의 컨텍트'에서 보지 않고, 실제 함께「관계의 컨텍트」로 보기 시작하도록 도와주고,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하고, 고백하는지 실제로 해 보면, 훨씬 쉽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글로 표현하기에는 제한을 느낀다. 우리에게는 동기부여도 필요하다. 기본적인 원리나 최소한의 방법만 제시하고, 반복적인 경건의 훈련을 통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지속성과 꾸준함(성실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갈망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드리는 훈련, 최고의 가치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영혼이 경험하고, 그 하나님을 경배하며, 누리는 영생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는 의지가 성령님 안에서 더 강해져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진리가 우리의 살과 피가 되려면,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대충, 적당히 하면, 결과는 미미하고, 가치 없는 것을 얻는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알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 없이 시도하고, 적용하고, 그 안에 숨겨진 보화들도 발견하여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것(유업)으로 취한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일시적이고, 갸치 없는 것에 낭비하고,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 전부를 쏟아서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신 예수님의 피와 큰 희생, 하나님의 아픔과 고통을 가치 없게 만들기에는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이 넘 크다.

 

성령님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각 사람의 마음에 빛을 비추시고, 말씀이 살아서 생명이 되도록 역사하셔야 하기 때문에 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명백하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사랑의 관계는 '또 다른 하나의 방법론이 아니기에 또 하나의 틀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고민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아시기에 각 사람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알맞는 하나님의 지혜와 시기적절한 방법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믿고,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