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과 경배로 영광 안에서 살아가는 것
By 죠슈아 밀즈
제가 여러분의 찬양과 경배 시간에 이 곳에 들어왔을 때, 너무 아름다운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제가 깨닫는 것은, 찬양과 경배는 이러한 영역을 만들어낼 수 가 있어요. 그리고 영광의 영역을 만들어낼 수 가 있어요. 어제 제가 찬양에 대해서 나누었는데, 여러분의 찬양이 분위기를 바꾼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찬양하고 경배할 때 그런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속 기억할 수 있도록 노트에 적으세요.)
이렇게 적으세요. ‘나의 찬양이 분위기를 바꾼다. 그리고 나의 예배가 그 분위기를 유지한다.’
다시 말하자면, 찬양은 들어가는 문이고 우리가 그 문에 감사함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찬양은 패배에서 승리로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자에서 성취하는 자로 바뀌게 됩니다. 또 피해자에서 승리자로 변화하게 되죠. 내가 하는 찬양이 나를 말해주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여러분은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그 하실 일을 찬양하게 될 때, 우리가 노래하고 기쁨으로 주님을 높이고 열정적으로 주님을 찬양할 때,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 돌파하게 되는 시점이 일어나게 되죠. 그래서 영적 전쟁이라는 것은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우리가 들어가기 위해서 계속 밀어 붙이는 것이죠.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계속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찬양을 통해서 돌파할 때, 영계에서 어떤 영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갑자기 주님의 임재를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궁정에 찬양을 통해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우리의 행동이 약간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도 변하게 되죠. 우리가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것에서 갑자기 가만히 서서 손을 들고 주님을 바라보는 행동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리의 거룩한 손을 드는 태도로 변하게 됩니다. 경배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경배는 찬양과는 약간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앞으로 하실 일들에 대해서 찬양을 하는 것이고, 그러나 경배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법으로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치유 테라피 같은 것이 있는데, 그들이 발견한 것은 눈의 신경도 손바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손을 들 때는 우리의 눈이 주님을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들고 주님을 경배할 때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말 뜻은,‘내가 주님 앞에서 완전히 순복하고,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완전히 내 마음을 엽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대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는 대로 주님을 경배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네 생물들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 놀랍습니다. 밤낮으로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주변을 빙빙 돕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 이 네 생물들이 머리가 넷인데 날개와 눈으로 가득 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몸 전체가 눈으로 완전히 덮여 있다고 합니다. 보좌 주변을 돌면서 그들이 고백하는 한 마디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입니다. 시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그 네 생물들은 보좌 주변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돌면서 거룩하다를 외칠 때마다 다른 것을 보고 거룩하다라고 한다는 것을 믿어요. 완전히 눈으로 덮힌 존재가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면서 거룩하다고 할 때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다른 면을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치료자이시군요.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은신처이시군요.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이시군요.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군요.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유다의 사자이시군요.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강한 성루이시군요.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창조이시군요.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시군요.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주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군요.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경배 안에서 우리를 그런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방법으로 주님을 볼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주님 앞에 새로운 경배의 노래를 올려드릴 수 있도록, 그리고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우리가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인식하는 그러한 분위기에서,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선포하는 그러한 영역안에서, 갑작스럽게 우리는 주님의 위대함 안으로 인도함을 받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계신 곳으로 초청을 받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안에 주님이 거하고 계신 장소로 우리가 인도함을 받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안식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들어가는 것이죠. 영광 안에서는 모든 것이 아주 쉽습니다. 영광 안에 있을 때는 더 이상 씨름이나 투쟁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흘러가는 것입니다. 영광과 함께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광 안에 그렇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룻 헤플린’이라는 분이 몇 년 전에 이스라엘에 갔었는데, 하나님의 방문을 받을 때 네 생물들이 나타났습니다. 마치 빛이나 섬광처럼 자고 있는 호텔 방에 들어왔는데, 그 때 계시가 임했습니다. ‘너는 경배의 영이 임할 때까지 찬양하라. 영광이 올 때까지 경배하라. 그리고 영광 안에서 잠잠히 머무르라’
우리가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찬양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춤추고, 함성을 지르고, 기뻐하고 점프도 할 수 있습니다. 경배의 영이 임할 때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죠. 경배의 영이 임하게 되면 우리가 손을 들고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밀함의 노래를 주님 앞에 올려드리고 주님이 누구신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곳으로부터 그 높은 영역으로 인도함을 받아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 안으로 초청을 받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온전하심 안으로 초청을 받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광 안에 들어가게 되면 잠잠히 서 있거나, 손을 들기도 하고 바닥에 눕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습니다. “죠슈아 형제님, 왜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집니까?“ 나의 대답은 “그들이 일어날 수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영광 안에서 어떻게 서 있을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매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마다 저는 쓰러져요.” 솔로몬의 성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영광의 구름이 가득 찼고, 그래서 제사장이 섬기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많은 제사장들이 바닥에 쓰러졌을 것입니다. 저의 대답은 영광 안에는 우리의 육이 다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은 일어서게 됩니다. 새로운 빛 가운데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 안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시와 깨달음 가운데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기적의 영역 가운데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안식 안에서 우리의 영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광 안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영광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기적들을 그 영광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다른 곳에서는 줄 수 없었던 축복을 그 영광 안에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깨닫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찬양과 경배는 우리를 영광 안으로 연결시켜주는 열쇠와 같습니다.
찬양과 경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로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갈보리 십자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과학적으로 어떤 특정한 소리가 우리의 몸에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소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의학 연구가들이 발견한 것은, 높은 소리의 음이 우리의 신경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아주 낮은 소리는 우리의 순환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의학적인 사실은, 평화로운 음악이 우리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평안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질병이나 연약함을 사람들을 실제로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음악을 통해서 우리의 통증까지도 말끔히 없애준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이 굉장히 놀랍습니다.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음악치유가 약을 먹는 것보다 4배~8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혈압을 낮출 수가 있고, 수면을 향상시킬 수도 있고, 우리의 불안감도 감소시켜줍니다. 고대 사람들도 음악으로 우울증 같은 것을 치료한다고 믿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사무엘상 16장 23절), 악한 영이 사울 왕에게 몸에 고통을 주었습니다. 감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도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프를 연주했을 때 그 악한 영이 떠나갔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도 음악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나누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분위기에 대해 연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감정도 우리가 듣는 소리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뇌가 감정을 통제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주 느린 음악을 들으면, 뇌의 활동도 느리게 되고 우리를 편안하게 쉬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빠른 음악을 들으면, 뇌가 영향을 받아서 긴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과학적인 사실은 흰개미들이 헤비메탈 음악을 듣게 되면 나무를 2배로 빨리 갉아먹는다고 합니다. 그 음악으로 자극을 받기 때문에요. 그 사실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 음악이 우리의 몸에 어떤 일을 행하는가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안식으로 들어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기름부음 받은 찬양과 경배는 우리의 몸을 치유합니다. 영광의 소리가 기적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를 향해서 ‘잠잠하라’고 하셨을 때 그 바다가 순종했습니다. 영광의 소리가 분위기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병이 나서 누워있을 때 예수님께서 명령하니까 그 하인이 나았습니다. 영광의 소리가 분위기를 바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향해서 명령하니까 죽었던 시체가 일어나서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떤 소리든지 영광으로 충만한 소리는 그 분위기에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바꿉니다. 마태복음 21장 21~22절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네가 말하고, 영광의 소리로 네가 이 말씀을 선포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변화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마치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벽들이 찬양할 때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찬양할 때 아주 담대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려고 할 때 여호사밧 왕은 찬양하는 자들이 앞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미치도록 찬양하는 사람들은 아주 미친 결과를 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찬양이 퍼져 나갔을 때, 숨겨져 있던 역병들을 만드셔서 전쟁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싸우는 천군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찬양할 때 여러분을 위해 싸울 천군들이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 수련회 셋째 날 낮 시간에 찬양과 경배에 대해 전해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의 아름다운 성품과 위엄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